'근로자의 날'이냐 '노동절'이냐, 뭣이 중헌디?

1890년 5월 1일 International Workers' Day 시작
근로자의 날 출근하는 직장인 30.4%, 영세기업은 59.1%

신진욱 편집인 승인 2023.05.01 13:12 | 최종 수정 2023.05.31 23:25 의견 0

한국경영자신문 취재본부가 있는 경기도 김포시 구래동은 오피스텔과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가 곳곳에서 한창이다. 창문으로 보이는 공사장만 3곳이다. 창이 없는 옆쪽에 1곳, 뒤쪽에도 2곳이 공사 중이다.

봄이 되자 공사는 일요일, 공휴일에도 쉼이 없다. 비 오는 날에도 아침 7시부터 시작하던 공사가 화창한 오늘은 올 스톱이다. 매일 들리던 공사 소음이 멈추자 오히려 적막하다. 5월 1일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일을 멈춘 김포시 구래동 소재 공사현장. ⓒ한국경영자신문
'근로자의 날'을 맞아 일을 멈춘 김포시 구래동 소재 공사현장. ⓒ한국경영자신문

‘근로자의 날’의 국제 통용어는 (International) Workers' Day 또는 May Day다. 비상 구조를 요청하는 ‘메이데이’는 May와 Day를 붙여 Mayday로 쓴다.

비극적인 ‘헤이마켓 사건’이 International Workers' Day를 탄생시켰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다. 3일, 경찰이 파업 농성 중인 사람에게 발포해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는다.

4일 저녁 노동자들과 시민 등이 헤이마켓 광장에 모여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다. 경찰이 강제 해산하려던 순간, 누군가 경찰을 향해 폭탄을 던진다. 경찰이 총을 난사해 경찰 7명, 민간인 여러 명이 숨지고 경찰 60명, 민간인 수십명이 다쳤다.

하이마켓 시위 일러스트레이션. 출처 F.J. Schulte & Company: 1889. Illinois History and Lincoln Collections.
하이마켓 시위 일러스트레이션. 출처 F.J. Schulte & Company: 1889. Illinois History and Lincoln Collections.

경찰은 노동운동가 8명을 재판에 회부했고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실제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폭탄을 던진 진짜 범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자본가가 기획한 사건이다”, “무정부주의자가 범인이다”는 음모론만 유령처럼 떠돈다.

1889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세계노동자대회’에서 시카고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International Workers' Day로 선포했고 노동절의 효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근로자의 날’로 불릴까?

이승만 정권 때는 대한노총 결성일인 3월 10일이 노동절이었다. 1963년 박정희 정권 때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 ‘근로자의 날’로 불리게 됐다. 1994년 날짜는 5월 1일로 바뀌었지만 명칭은 아직까지 ‘근로자의 날’이다.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에는 ‘노동자’란 단어가 없다. 헌법에 ‘근로’ 9번, ‘근로자’는 4번 등장하지만 ‘노동’, ‘노동자’라는 단어는 없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근로자’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37건의 법령이 뜬다. ‘노동자’를 검색하면 0건이다. 그런데 근로자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부처의 이름은 ‘고용노동부’다. 언론도 근로자의 날과 노동절을 자기 입맛에 맞게 쓴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다. ‘근로자’라는 단어가 군소리 없이 열심히 일만 하는 순종을 강조하고 일제 잔재라는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갈수록 악화되는 기업의 경영상황과 근로자의 근무조건 개선이 먼저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실시한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4%가 ‘근로자의 날’에 출근한다고 답했다. 근로자 5인 미만 기업의 종사자는 59.1%가 출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무원들은 ‘근로자의 날’을 공무원의 유급휴일로 지정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헌법소원을 냈다.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근로자의 날을 공무원의 유급휴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공무원들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합헌 판결을 내렸다.

법으로 지정된 유급휴일이지만 쉴 수 없는 많은 직장인과 집회에 참석할 수 있게 ‘근로자의 날’을 유급휴일로 지정해 달라는 공무원이 공존하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다.

노사의 대화·타협·공존·상생은 이론으로나 가능할 뿐, 우리 진영의 몫을 챙기려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부추김은 여전하다. 가뜩이나 힘든 국민과 실물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원을 챙길 여력이 없는 경영자나 오늘도 출근해야 하는 직원들에게 ‘근로자의 날’이냐 ‘노동절’이냐 논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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